전체 글92 욕망과 상처, 『파란 대문』이 그리는 세계 낯선 도시, 낯선 관계의 시작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은 기존의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작품이다. 그는 특유의 거친 연출과 최소한의 대사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관계의 불안정성을 파헤친다. 영화는 한적한 도시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한 여자가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정혜(장선우). 정혜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조용히 살아가지만, 그녀의 삶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이얼)가 그녀의 이발소를 찾는다.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면도를 맡기고, 정혜는 익숙한 손길로 그의 얼굴을 정리한다. 그들의 첫 만남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처럼 보이지만, 정혜의 눈빛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김기덕 감독은 이 장면에서 불필요한 대화를.. 2025. 2. 5. 폭력과 생존의 미학, 김기덕의 『악어』 한강에서 살아가는 인간 악어한강 다리 밑,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버려진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시체를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기로 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악어’(조재현). 그는 한강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악어는 다리에서 투신한 시체가 떠오르면 먼저 건져 올려 유류품을 빼앗고, 그 유가족에게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며 돈을 받아낸다. 말 그대로 죽음을 거래하는 삶을 살아간다. 도덕적 기준이 없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뿐이다. 그와 함께 사는 여인(우순경)과 소년(정태우)은 그의 폭력과 생존 방식에 익숙해진 채 살아간다. 악어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호하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은.. 2025. 2. 5. 광기의 미로, 거울 속 또 다른 나 – 히치콕의 『사이코』 평범한 도망, 비극의 서막마리온 크레인(자넷 리)은 평범한 삶을 갈망하던 여자다. 그녀는 애리조나의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하며 안정적인 직장과 삶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사랑하는 남자 샘(존 개빈)과 결혼하고 싶지만, 그의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엄청난 유혹이 찾아온다. 회사에서 고객의 자금 4만 달러를 맡게 된 것이다. 마리온은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돈을 가지고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계획도 없이 무작정 차를 몰고 도시를 빠져나간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긴장감이 그녀를 옥죄기 시작한다. 도로를 달리던 중 경찰에게 의심을 받게 되고, 차를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점점 초조해진다.. 2025. 2. 4. 히치콕 이창, 서스펜스의 절정을 경험하다 엿보기 본능이 불러온 위험한 사건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1954)은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서스펜스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면서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주인공과 같은 시선을 공유하도록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다리를 다친 후 깁스를 한 채 휠체어 생활을 하는 사진작가 제프(제임스 스튜어트)다. 그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이웃들을 관찰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날 맞은편 건물에서 벌어진 수상한 행동을 목격하게 된다. 한 남자가 갑자기 아내의 모습을 감추고, 수상한 짐들을 옮기는 장면을 본 것이다. 이를 단순한 상상이라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제프는 점점 강한 의심을 품게 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관객이 철저히 제프의 .. 2025. 2. 4.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