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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생존의 미학, 김기덕의 『악어』

by Koh Minseong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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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살아가는 인간 악어

한강 다리 밑,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버려진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시체를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기로 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악어’(조재현). 그는 한강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악어는 다리에서 투신한 시체가 떠오르면 먼저 건져 올려 유류품을 빼앗고, 그 유가족에게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며 돈을 받아낸다. 말 그대로 죽음을 거래하는 삶을 살아간다. 도덕적 기준이 없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뿐이다.

그와 함께 사는 여인(우순경)과 소년(정태우)은 그의 폭력과 생존 방식에 익숙해진 채 살아간다. 악어는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호하기도 한다. 김기덕 감독은 이 관계를 통해 ‘폭력과 생존의 관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인이 다리에서 몸을 던진다. 그녀의 이름은 현정(우순경). 그러나 그녀는 죽지 않고 악어에게 발견된다. 악어는 그녀를 강제로 자신의 공간으로 끌고 와 가둬둔다. 그리고 그녀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가르치려 한다.

김기덕 감독은 악어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조명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이 남아 있는 공간. 거칠고 폭력적인 악어의 세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욕망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 그리고 폭력

악어의 세계에서 폭력은 일상이다. 그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폭력을 통해 자신의 우위를 확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폭력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현정은 처음에는 악어를 두려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묘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김기덕 감독은 이 과정에서 인간이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한강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강물은 죽음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삶을 지속시키는 존재다. 악어는 한강에서 시체를 건져 올려 돈을 벌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그는 마치 한강의 일부처럼 보인다.

김기덕 감독은 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거리에서, 강가에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투명한 존재로 만든다. 악어는 그 투명한 존재들의 대변인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악어의 폭력에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은 폭력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 점이다. 그의 폭력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악어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폭력을 단순한 악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의 폭력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사랑인가, 집착인가? 파멸로 향하는 길

 

영화가 진행될수록, 악어와 현정 사이에는 기묘한 감정이 싹튼다. 처음에는 폭력으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둘은 점점 서로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사랑인지, 단순한 생존을 위한 공생인지 분명하지 않다.

현정은 처음에는 악어를 혐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 역시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였고, 악어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악어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악어의 삶에는 희망이 없다. 그는 끝없는 생존 경쟁 속에서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다. 경찰의 단속은 점점 심해지고, 한강에서 살아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결국 그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악어는 한강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강물은 그를 집어삼킨다. 그는 한강과 하나가 되어 사라진다.

김기덕 감독은 『악어』를 통해 인간의 생존 본능과 폭력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악어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의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악어』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회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악어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그의 삶이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싸운다. 하지만 악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다면, 과연 우리는 그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악어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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